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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작성일 : 2004.06.15 00:00 조회 : 779

우리 뒷집에는 올해 100살 된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다른 가족은 없고 일흔다섯된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산다. 아들은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밥짓고 반찬 만드는 일을 혼자서 한다. 가을 김장은 200포기씩이나 담가서 시내에 사는 동생들에게 보내는 것을 보았다.

동네에서 효자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잘 하다가도 소동을 일으킬 때가 자주 있다. 장날만 되면 장에 내려가서 만취가 되어 돌아오는데 집에 들어서면서 노모에게 달려든다.

"엄마, 빨리 아부지 곁에 가소! 와 이래 내 애를 먹입니꺼?? 엄마가 빨리 가야
나도 아들네 가서 편하게 살지예......"

노모를 모시는 아들의 아들도 다 결혼해서 아이를 두고 사는 나이인지라 어머니에게 매여 사는 것이 힘들다고 이웃에게 내놓고 푸념을 한다. 그러다가 술에 취하면 아예 어머니 앞에서 속마음을 토하는 것이다. 희한한 일은 아들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백살된 어머니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100살 할머니가 사는 집은 지은 지 300년이 넘은 집이고 마당과 뒷마당을 합치면 또 300평이 넘는 넓은 집인데 그곳에서 말하는 내용이 우리집까지 다 들린다. 지난 장날에는 뒷집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시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자식들이 우는가 했다. 그런데 뒷담 곁에 가서 들어보니 할머니의 울음소리였다. 할머니는 목욕을 할 때마다 아이처럼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도 잊고 해가 서산 아래로 내려간 지도 한참 후인데 뒷집에서 빨래를 맡아서 하는 도우미 아줌마가 우리집으로 달려왔다. 할머니가 마루에서 떨어졌는데 혼자서는 일으키지 못하겠다면서 도움을 청했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뒷집으로 달렸다. 장날에는 아들이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굵은 마루기둥을 두손으로 움켜잡고 댓돌 위에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암벽등산을 하다가 실족을 해서 벼랑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 또 울었다.

" 아이구, 도와 주이소. 도와 주이소......"
속삭임 같은 작은 소리는 거의 절규였다.

내가 할머니를 일으키려고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부축하려는데 기둥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기둥을 잡은 손의 힘이 어찌나 억센지 내 힘으로 그것을 떼어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가까스로 할머니를 일으켜 마루에 올리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백년의 세월이 체중에 다 실린 듯했다.

할머니를 방까지 모셔드리고 나오는데 뒤에서 또 소리가 들렸다.
"고맙십니데이. 고맙십니데이......"

참 놀라웠다. 100살 된 할머니의 억센 팔 힘이 놀라웠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루기둥을 잡고 견딘 의지와 생(生)에 대한 애착이 놀라웠다. 가벼울 줄만 알았던 할머니의 체중이 놀라웠고 위기에 처했어도 순간순간 할 말을 알맞게 할 줄 아는 초롱초롱한 정신이 놀라웠다.

노모를 모시는 아들은 버릇처럼 말한다. '올해는 가시야 되는데......올해는 가시야 되는데......' 동네 사람들도 아들 걱정만 한다. 아무도 그렇게 오래 살고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들께 새해인사를 할 때면 으레 이렇게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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